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문단 편집)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비해선 한 세대 뒤의 인물로 젊었을 때는 대선배인 레오나르도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는 루키 포지션이었다. 레오나르도와 피렌체 베키오 궁전 벽화 대결까지 벌였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 완성되었다면 미술계의 영원한 보물이 되었겠지만 두 사람 다 완성시키지 못한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개발해서 칠한 니스의 성분 문제로 말그대로 그림이 녹아내려 버리는 등 거듭되는 실패, 미켈란젤로는 특유의 변덕스러움과 교황의 부름에 의해 끌려나갔다. 그나마 남아있던 흔적들조차 전란 중에 사라져버린다. 다만 레오나르도의 작품(앙기아리 전투)의 경우엔 [[라파엘로]]가 모사한 스케치가 남아있다. 그리고 2012년에 들어와 베키오 궁전에서 레오나르도가 그렸던 '앙기아리 전투'의 흔적이 발견되어 고고학계를 흥분 시켰다.] 특이하게도 이 선의의 대결에서 두 사람은 모두 서로 부담감과 특이한 호기심으로 탐색하는데 그쳤다. 실제로 몇몇 그들의 당시 스케치는 서로의 스타일을 반영해보려고 흉내낸 티가 보이기도 했다. 그 뒤에도 이 둘의 라이벌 관계가 유지되었다. 미켈란젤로는 회화를 '사람의 눈을 속이려 드는 수작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조각만 못하다.'고 깎아내렸고[* 미켈란젤로의 조각 사랑은 말년에 [[최후의 심판#s-2|최후의 심판]]을 하기 전까지 계속 된 듯 싶다. 그의 이런 성격은 너무나 유명했기에,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를 강요한 [[율리오 2세|교황]]에게 얼마나 큰 반감을 가졌을지 상상이 간다. 그래도 말년에 그는 '조각과 회화를 서로 비교하며 우위를 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는 '조각가의 모습은 마치 머리에 빵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제빵사 같다.'고 했다.[* 조각가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상 평상시에도 조각하다 씻지도 않고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미켈란젤로를 겨냥한 말.] 두 사람은 나이가 스무 살이 넘게 차이가 났는데, 대선배 레오나르도를 존중할 줄 몰랐던 미켈란젤로의 [[싸가지]]와 20년이나 어린 친구의 치기를 기를 쓰고 이기려 들었던 레오나르도의 유치함이 합쳐져 저 둘은 정말 초등학생들처럼 유치하게 싸우며 살았다. 그나마 두 사람을 이해해주자면 당시 예술가라는 직업은 결국 지금의 프리랜서와 비슷한 개념이었고, 조금 더 실력이 있고 명성이 높은 쪽이 더 좋은 계약을 따내게 되어 있다. 연상에 대한 존중을 챙기거나 연하에 대한 관대함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선배 예술인에 대해 존중하지 않았던 건 레오나르도도 마찬가지였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수태고지]]를 보고 천사가 성모를 위협하는 듯이 그렸다며 주변인들에게 그림을 저따위로 그리지 말라며 대차게 깠던건 유명한 일화다.] 두 사람의 싸가지 & 속좁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는데, 잘생긴 외모와 언변으로 인기가 많았고 젊은 추종자를 많이 이끌고 다녔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에게 어느 날 광장에서 추종자 한 명이 [[단테]]의 시에 대해 모르는 걸 물어보았다. 레오나르도는 마침 그때 [[지나가던]] 미켈란젤로를 보았고 항상 패션에 신경을 쓰던 레오나르도와 달리 넝마같은 옷을 입고 대리석 가루를 뒤집어 쓴 미켈란젤로를 보자 곯려주고 싶었는지 "저 젊은 친구가 나보다 더 잘 알 거요."라고 했다. 사실 한 번 봐도 늬앙스를 이해할 수 있듯이 '쟤 한테 물어봐'라기보다 '저기 쟤 옷 입은 꼴 좀 봐. [[단테]]를 알긴 지가 쥐뿔 알겠어?'에 가까운 놀림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나와 있듯이 로렌초 공방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높은 수준의 교양을 쌓게 했고 더군다나 [[단테]]는 미켈란젤로가 가장 좋아하는 문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레오나르도의 추종자들은 미켈란젤로의 몰골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자기 무시하면 교황한테도 대드는 미켈란젤로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사실 레오나르도는 [[지뢰]]를 밟은 정도가 아니라 그 위에서 점프를 해 댄 셈. 당연히 미켈란젤로의 성질머리는 폭발했는데 >"당신이 알려줘도 되잖소? 뭐 당신이란 인간은 [[밀라노]]에서 만들던 동상[* 루도비코 스포르차]도 완성하지 못하고, 뭐든지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인간이지만!"[* 레오나르도는 현대 [[정신과]]의 [[ADHD]] 진단 기준에 전부 들어맞는다고 한다.] 하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말하다가 화가 더 났는지 2차로 폭발해 극딜하길 >"그 동상을 완성시킬 줄 알고 네놈한테 일을 맡긴 그 밀라노 놈[* [[밀라노]]의 영주 스포르차를 지칭한다.]은 천하에 둘도 없는 돌대가리야!" 라고 했다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는 그말에 대꾸도 못하고 입만 뻐끔뻐끔 했다고. 애초에 레오나르도에게 이 따위로 말을 뱉을 수 있는 인간은 별로 없었다. 이 일화 말고도 두 사람 사이의 키배 및 분쟁에 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상기한 피렌체 베키오 궁전에서 앙기아리 전투(레오나르도) vs 카시나의 전투(미켈란젤로)로 서로 경쟁할 당시에는 사이좋게 쌍욕을 면전에서 교환할 정도로 사이가 최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작업 중 니스가 녹아내려 그림이 엉망이 되었을 때 레오나르도의 안티가 그걸 보고 "영감탱이 꼴 좋게 됐군"이라고 했을 때에는 미켈란젤로가 그의 턱에 주먹을 날렸고 "너 같은 게 진정한 예술을 알기나 하느냐"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일본 슈에이샤에서 나온 '세계의 역사' 제8권에 실려 있는 내용.] 일례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성당 부벽을 장식할 '다비드'의 조각을 맡을 사람을 물색하다가 당시에는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미켈란젤로에게 그 일을 맡겼을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나마 만들다가 망하기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걸작이 태어났으니 분노는 2배. 위에도 써 있지만 이 다비드 상의 질이 생각보다 너무나 좋자 성당 측은 '이걸 부벽이나 장식하려고 놓는 건 낭비다' 라는 판단하에 새로운 거치 장소를 물색하고자 회의를 여는데, 이 회의에는 레오나르도 역시 끼어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그냥 구석탱이에 처박아두죠' 라는 늬앙스로 말한 것 역시 유명한 일화. 당연히 미켈란젤로의 뇌 속에서는 레오나르도에게 영원히 떼어지지 않을 '혐' 마크가 붙어 버렸다. 하지만 [[동족혐오]]였는지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다. 둘 다 [[동성애자]] 의혹을 받고 있다.[* 레오나르도의 경우에는 의혹 정도가 아니라 [[양성애자]]라는게 학계의 평론이다.]일단 미켈란젤로는 남성의 근육미에 집착한 것도 그렇고,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인데다가 미청년들과의 편지 왕래도 있다. 물론 비토리오 콜론나라는 부인과 깊은 교류를 하기도 했으나, 비토리오 콜로나는 남성적인 여성이었다 하고, 이조차도 정신적인 교감이었지 육체 관계는 없었다. 레오나르도가 여자를 혐오했고 동성애 혐의로 피소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둘 모두 자신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릴 줄 몰랐다. 레오나르도도 미켈란젤로도 교회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인체 해부를 해 댔으며 사실상 그들의 재능이 교황 등 윗줄에서 인정받고 소중히 여겨지지 않았다면 엄벌을 받았을 것이다. 미완성작이 많은 것 역시 공통점. 다만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와 비교했을 때에 완성품이 더 많기도 하다. 애초에 미켈란젤로가 미완성작이 많은 건 레오나르도처럼 하나 만드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집중을 못 해서가 아니라 젊은 시절 자신의 기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과로|되도 않게 계약을 많이 잡아서]] 그렇다. 미켈란젤로가 수락하고 완성못한 프로젝트는 [[율리오 2세]]의 영묘를 위한 40개의 조각, 12사도 조각, 카시나 전투 벽화 등이 있다. 미켈란젤로 특유의 엄청난 작품 제작 속도를 감안해도 하나에 1년이 걸린다 치면 이거 다 만드는데 53년이 걸리는 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